[K게임 대도약, 지금이 골든타임]〈4〉사설서버 이용 年 230만명·피해 3600억…산업 생태계 붕괴
게임산업 경쟁력을 위협하는 적은 더 이상 개발비 상승이나 글로벌 경쟁만이 아니다. 불법 핵(치트 프로그램)과 매크로, 사설서버가 게임 생태계를 갉아먹으며 이용자 신뢰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훼손하고 있다. 게임사들은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해 불법 프로그램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법적 처벌과 행정 대응은 여전히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재명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국가 차원의 과제로 끌어올렸다. 지난 5월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국가정상화 프로젝트' 1차 과제에 처음으로 '불법 게임 사설서버 근절' 대책이 포함됐다. 정부는 불법 사설서버 운영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과 과징금 도입, 긴급 차단 제도 신설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게임업계는 불법행위 대응을 국가가 함께 책임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대응에 속도를 내달라고 주문한다. ◇230만명 불법시장…게임 생태계 좀먹는 '암세포' 불법 사설서버와 핵 프로그램은 단순한 저작권 침해를 넘어 게임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대표적인 불법 행위로 꼽힌다. 사설서버는 게임사의 허가 없이 게임 데이터를 무단 복제하거나 변조해 별도 서버를 운영하는 행위다. 핵과 매크로는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를 방해하며 공정한 경쟁 질서를 무너뜨린다. 게임사가 수년간 투자해 구축한 서비스와 경제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이용자 이탈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정부도 피해 규모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연간 약 230만명이 불법 사설서버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피해 규모도 연간 3600억원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5년간 적발된 불법 사설서버도 17만건을 넘어섰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올해 초 게임물관리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사설서버를 운영하며 소스코드를 훔치거나 해킹하는 행위는 명백한 조직범죄”라며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산업재산권과 저작권, 조직범죄가 모두 결합된 문제인데 그동안 충분한 대응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사설서버가 게임사만의 피해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게임사 관계자는 “불법 사설서버는 수년간 게임 산업 발전을 저해해 온 암초였다”며 “정상적으로 게임을 서비스하는 기업은 물론, 공정하게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까지 피해를 보는 구조”라고 말했다. ◇AI 총동원에도 끝없는 '핵과의 전쟁'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불법 프로그램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과거 메모리 변조나 단순 핵 탐지 수준을 넘어 이용자의 행동 패턴과 음성 채팅, 하드웨어 접근 방식까지 분석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에 자체 안티치트 시스템과 AI 기반 음성 탐지 기술을 적용했다. 엔씨는 AI 탐지 모델과 실시간 감시 시스템을 통해 비정상 플레이를 적발하고 있다. 넥슨은 AI 조직 인텔리전스랩스와 게임핵 대응팀이 공동 개발한 'LBD(Live Bot Detector)'를 운영하고 있으며, 넷마블도 딥러닝 기반 이상행동 탐지 시스템을 주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 확대 적용하고 있다. 동시에 AI가 발전할수록 불법 프로그램도 함께 진화한다. 핵 제작 조직은 탐지를 우회하기 위해 새로운 알고리즘과 변조 방식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고, 적발된 이용자는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다시 게임에 접속하는 일이 반복된다. 기술 경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게임사는 불법 핵·매크로 이용이 적발된 유저에 대한 계정 정지를 넘어 형사 고소까지 단행하며 강경 대응 기조를 보이고 있다. 엔씨는 '아이온2'와 '리니지 클래식'에서 불법 프로그램 이용자를 형사 고소하며 대응 수위를 높였고, 넥슨도 '서든어택' 불법 프로그램 이용자를 업무방해 및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단순 운영정책 위반이 아니라 사법적 책임까지 묻겠다는 것이다. ◇법은 제작자만 처벌…이용자는 여전히 사각지대 업계의 강경 대응에도 한계는 분명하다. 현행 게임산업법은 불법 프로그램 제작·배포자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작자와 유포자는 처벌 대상이지만 실제 불법 프로그램을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이용자를 직접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일부 게임사가 업무방해 혐의로 이용자를 형사 고소하고 있지만 고의성 입증이 쉽지 않고 처벌 수위도 제한적이다. 불법 사설서버 역시 대부분 해외에서 운영되거나 VPN과 도용 계정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국내 법 집행만으로는 실효성 있는 대응이 어렵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처벌 수위를 높이고 상습 이용자까지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에는 상습적으로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해 다른 이용자의 게임 이용을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이용자 직접 처벌을 두고는 과잉입법 우려도 제기되는 만큼 입법 과정에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게임 보안 전문가는 “탐지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법적 억지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같은 사람이 계정을 바꿔 다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된다”며 “게임사가 감당하던 문제를 이제는 법과 제도가 함께 해결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사설서버는 '현대판 복돌이'…이용자 인식도 바뀌어야 전문가들은 불법 사설서버와 핵 문제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게임 이용 문화와 산업 인식이 함께 맞물린 문제라고 진단한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이를 과거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을 무너뜨렸던 불법복제와 같은 맥락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과거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을 사실상 괴멸시킨 것이 불법복제였다면, 지금의 사설서버와 핵 문제는 온라인 게임 시대의 불법복제와 다를 바 없다”며 “게임산업이 수십 배 성장했지만 이를 좀먹는 불법 시장 역시 함께 커졌다는 점을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용자 인식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불법 사설서버와 핵을 이용하는 수요가 존재하는 한 공급도 계속 생겨난다”며 “게임사와 정부의 단속도 중요하지만 이용자들이 불법 서비스를 소비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돼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