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민의 AI시대 사고(思考)] AI는 왜 생각보다 조직을 많이 바꾸지 못하는가
조직은 기술적으로 더 효율적이 됐는데 체감 생산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문제를 정의하고 기준을 만들며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 중요 조직 경쟁력, 낮아진 실행 비용을 어떤 판단 구조로 흡수할 수 있는가에 달려 본격적인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해 기술, 정책 그리고 인간의 판단에 대한 기록을 여덟 차례에 걸쳐 게재합니다. ①AI는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남기는가 ②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왜 과대평가되었는가 ③AI는 왜 생각보다 조직을 많이 바꾸지 못하는가 ④AI 시대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⑤AI 거버넌스는 기술 규제가 아니다 ⑥조직은 무엇을 자동화해야 하는가 ⑦생각을 위임하는 사람들의 시대 ⑧AI 리터러시는 충분한 개념인가.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조직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상당히 급진적이었다. 사무직 업무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되고,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하며, 기존의 조직 구조 자체가 크게 단순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이어졌다. 실제로 일부 변화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문서 작성, 정보 탐색, 분석과 정리의 비용은 빠르게 낮아지고 있고, 과거에는 시간이 많이 들었던 업무들이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수행된다. 하지만 기술 변화의 속도에 비해 조직 변화는 생각보다 느리다.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기업에서도 회의는 줄지 않고, 결재 구조는 유지되며, 관리 비용이 오히려 증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람들은 더 빠르게 초안을 만들지만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기대만큼 줄어들지 않는다. 많은 경우 조직은 기술적으로 더 효율적이 되었는데 체감 생산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 현상을 설명할 때 흔히 기술 성숙도나 조직 문화가 이야기된다. 물론 중요한 요소다. 다만 그보다 먼저 살펴볼 것이 있다. 우리는 조직이 무엇을 하는 구조인지 생각보다 자주 오해한다. 조직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판단과 책임을 배분하기 위해 존재한다. 기업은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무엇에 자원을 투입할지 결정한다. 병원은 진료 행위를 수행하는 곳이 아니라 어떤 진료가 필요한지 판단한다. 정부 역시 행정을 집행하는 기관이라기보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책임을 조정하는 시스템에 가깝다. 업무는 이 구조 위에서 실행된다. 조직은 판단과 책임을 배분하기 위해 존재 이 관점에서 보면 최근 조직의 AI 도입 방식은 흥미롭다. 대부분의 조직은 의사결정 구조를 다시 설계하기보다 기존 업무 단위에 AI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보고서 초안을 AI가 작성하고, 회의 내용을 요약하며, 분석을 자동화한다. 그러나 승인 기준, 우선순위 설정, 위험 감수, 책임 귀속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조직에서는 자동화가 곧바로 단순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생성 비용이 낮아지면서 검토해야 할 정보와 선택지가 증가한다. 이전에는 생산이 병목이었다면 이제는 판단이 병목이 된다. 더 많은 문서가 더 빨리 만들어질수록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비용은 오히려 커진다. 이 변화는 조직 내 역할에도 영향을 준다. 반복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의 가치는 일부 낮아질 수 있지만, 문제를 정의하고 기준을 만들며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은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실행 능력보다 판단 구조를 설계하는 능력이 더 희소해지는 방향이다. 그래서 앞으로 조직의 경쟁력은 AI를 얼마나 많이 도입했는가보다, AI로 인해 낮아진 실행 비용을 어떤 판단 구조로 흡수할 수 있는가에 더 가까울 수 있다. 기술은 점점 더 쉽게 접근 가능해지겠지만, 조직이 여전히 경쟁력을 가지는 이유는 기술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결정을 조직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김효민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김효민 님은? 법률과 기술의 경계에서 디지털 전환을 연구하고 실무에 적용하는 전문가이다. 현 외국계 AI 기업 Gry AI의 이사이자, 법학을 기반으로 블록체인 분석, 디지털 자산 수사, 디지털 금융, AI 거버넌스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글로벌 블록체인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에서 디지털 자산 범죄 및 국가안보 관련 조사·분석 업무를 수행했으며, 현재 경찰청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공기관, 수사기관, 금융권 및 교육기관 등을 대상으로 강의 및 자문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AI 시대의 사회 변화와 기술 거버넌스를 주제로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