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년 상징의 추락...IBM 25% 폭락이 경고하는 'AI 블랙홀'
미국 기술의 상징이었던 IBM이 AI 시대의 첫 대형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주 주가 폭락은 단순한 실적 쇼크를 넘어, IBM의 사업 모델 자체가 AI 시대에도 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이다. IBM은 지난 14일(현지시간) 2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에 크게 못 미칠 것이라고 이례적인 사전 경고를 발표했다. 주가는 하루 만에 25% 폭락하며 100년이 넘는 역사상 최악의 하루를 기록했다. 시가총액도 2000억달러(약 300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이는 한때 IBM의 소규모 공급업체로 여겨졌던 브로드컴(1조8000억달러)이나 AMD(8000억달러) 같은 기업들에 크게 못 미치는 규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실적 쇼크가 아니라 "AI 혁명이 기존 엔터프라이즈 IT 기업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는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IBM의 문제는 기술 경쟁에서 뒤처진 것만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기업들이 AI에 너무 많은 돈을 쓰기 시작하며, AI 예산이 기업 IT 예산 전체를 잠식하는 이른바 'AI 예산 블랙홀'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들은 생성 AI 도입을 위해 엔비디아 GPU,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인프라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반면 IBM의 핵심 사업인 메인프레임 업그레이드와 기업용 소프트웨어 구매는 뒤로 밀렸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지금 당장 메인프레임을 교체할 필요가 없다"라며 투자 시기를 미루고 있다. 더 큰 문제로 꼽힌 것은 IBM의 전략적인 위치다. IBM은 AI 모델 경쟁에서 오픈AI와 앤트로픽, 구글 등에 밀렸고, 클라우드 시장에서는 AWS과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에 뒤처졌다. 엔비디아처럼 AI 인프라의 핵심 공급자도 아니다. WSJ는 IBM이 "너무 빠르게 변하는 AI 혁명과 너무 느리게 성장하는 기존 사업 사이에 끼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가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IBM이 미국 기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 때문이다. 특히 2011년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을 꺾은 '왓슨(Watson)'은 AI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또 메인프레임 시대를 만들었고, PC 시대를 열었으며, 인터넷과 클라우드 전환 과정에서도 자리를 지켜왔다. 반독점 소송과 PC 혁명, 모바일 혁명까지 견뎌냈다. 하지만 생성 AI 시대가 열리면서 존재감은 급격히 약해졌다. 기업 고객 시장에서도 IBM이 구축했던 영역을 오픈AI, 앤트로픽, 마이크로소프트가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이를 두고 AI 스타트업 콘토(Conto)의 켄 와타나 창립자는 X를 통해 "마치 클로드가 왓슨을 살해한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여기에 IBM의 위기는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전통적인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기업을 문제를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AI 기업 데이터로봇(DataRobot)을 이끄는 IBM 출신 데반잔 사하는 "시장이 재평가한 것은 분기 실적이 아니라 115년 된 엔터프라이즈 기업이 에이전트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세일즈포스, 워크데이, 스노우플레이크 등도 AI 모델이 기존 소프트웨어 기능을 직접 흡수할 수 있다는 우려에 직면해 있다. 이는 올해 초부터 부각된 사스포칼립스, 즉 "AI 모델이 소프트웨어를 먹어 치운다"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AI가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대체하면서 기존 기업들이 구축한 진입장벽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IBM은 그 변화가 가장 먼저 숫자로 드러난 사례가 됐다. IBM도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CEO는 AI와 정면승부하기보다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와 양자컴퓨팅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선택했다. 최근 미국 정부와 양자 반도체 생산시설 구축 계획을 발표했고, 2029년까지 대규모 상용 양자컴퓨터를 선보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라는 평이다. IBM은 AI 시장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견디며 양자컴퓨팅 시대까지 버텨야 한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팅의 본격적인 상용화까지 10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WSJ은 "투자자들은 결국 비전이 아니라 숫자를 본다"라며 "양자컴퓨팅의 미래가 아무리 밝아도 현재 사업이 무너지면 의미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월가에서는 벌써 행동주의 투자자의 개입 가능성, 사업부 분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물론 IBM이 과거에도 수차례 사망 선고를 극복했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시장이 이번에 던진 질문은 이전과 다르다는 평이다. 이처럼 IBM의 위기는 단순한 실적 부진이 아니라, AI가 기존 기술 기업을 얼마나 빠르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됐다는 평이다. 그리고 이제 IBM 다음 차례가 누구일지가 주목된다는 말이 나왔다. 한편, IBM은 오는 22일 정식 2분기 실적 발표 및 콘퍼런스 콜을 통해 구체적인 3분기 가이던스를 공개할 예정이다. 임대준 기자 ydj@ai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