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중동 악재 과도하게 반영...코스피 6000선이 저점"
[디지털투데이 오상엽 기자] 반도체 업황 정점 통과 우려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이 겹치면서 국내 증시가 과도한 가격 조정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이사는 20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현재 시장에는 반도체 피크아웃 우려와 미국·이란 갈등 재점화 가능성, 중국 인공지능(AI) 모델의 추격 등이 중첩적으로 반영돼 있다"며 "다만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이 과거처럼 적자 구조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본다면 현재 조정은 다소 과도하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국내 반도체 기업의 선행 주가순자산비율(PBR) 1.3~1.4배를 사실상 밸류에이션 하단으로 제시했다. 이를 코스피지수로 환산하면 6000선 안팎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코스피가 당장 6000선까지 10% 이상 더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모든 위기 상황을 반영해도 6000선은 지지될 수 있다는 의미로, 실제 해당 수준까지 급락한다면 오래 머물기보다 빠르게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급격한 가격 조정 이후 코스피는 7000선 초중반으로 반등한 뒤 빅테크 기업들의 매출과 클라우드 성장률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다만 지수가 8500선을 넘어가면 고점에서 유입된 투자자들의 차익 실현 욕구가 다시 강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불거진 반도체 피크아웃 논란과 관련해서는 이익 증가율보다 절대적인 이익 수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수출과 기업 이익의 증가 속도는 둔화할 수 있지만 AI 서버 수요와 장기 공급계약 확대 등으로 과거보다 높은 이익 수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다. 김 이사는 "반도체 수출 증가율만 보면 모멘텀이 둔화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수출 금액의 절대적인 수준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며 "반도체 사이클은 존재하더라도 AI 서버 수요가 늘어난 만큼 과거보다 사이클의 진폭과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주 예정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 발표는 증시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로 꼽았다. 시장에서는 AI 투자에 따른 현금흐름 악화와 설비투자 축소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지만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시장 점유율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투자 기조를 쉽게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이사는 "AI는 최종 승자가 시장을 장악하는 점유율 경쟁"이라며 "향후 12년간 재무적으로 다소 부담이 커지더라도 빅테크 기업들이 AI 설비투자 기조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실적 발표에서는 클라우드 매출 증가세가 유지되는지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증시 수급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진단했다. 고객예탁금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증권사들이 증거금률을 선제적으로 높인 만큼 반대매매가 시장 전체의 추가 급락을 유발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외국인의 반도체주 매도 역시 정점을 지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과거에도 반도체 이익 사이클이 상승할 때 외국인이 차익 실현에 나섰으며 현재 외국인의 반도체주 지분율이 과거 업황 부진기와 비슷한 수준까지 낮아졌다는 설명이다. 김 이사는 "외국인이 반도체주를 다시 적극적으로 매수할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이미 상당한 물량을 매도한 상태"라며 "앞으로 외국인 매도 강도는 점차 잦아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내놓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보완책도 시장 변동성을 낮추는 데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날 시장이 예상보다 견조한 흐름을 보인 가장 큰 배경은 규제 효과보다 주가가 이미 밸류에이션 저점에 가까워졌다는 인식이라고 봤다. 김 이사는 "일부 규제안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정부의 노력도 일정 부분 한몫했다"면서도 "시장이 예상보다 많이 하락하지 않은 것은 과도한 가격 조정으로 현 수준에서 저점을 지지할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스닥시장은 오는 9월을 전후로 정책 모멘텀이 살아날 것으로 전망했다. 강화된 상장폐지 기준 적용과 국민성장펀드 후속 사업 등 시장 구조 개선 정책이 구체화되면 코스닥시장도 정상화 과정에 진입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 이사는 "국내 시장은 반도체가 하락하면 다른 업종까지 함께 떨어지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코스닥시장은 현재 과도하게 하락했지만 9월께 관련 정책이 본격적으로 작동하면 새로운 모멘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