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전력 확보전…아시아개발은행, 범아시아 전력망 구축에 500억달러 투입
[디지털투데이 홍진주 기자]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35년까지 범아시아 전력망 구축에 500억달러(약 73조원)를 투자하는 구상을 추진한다. 여기에 디지털 인프라 구축 자금 200억달러를 더해 총 700억달러(약 103조원) 규모의 에너지·통신 인프라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20일(현지시간) 전기차 전문매체 클린테크니카에 따르면, ADB는 국가별로 분절된 전력 시스템을 연결해 재생에너지를 국경을 넘어 거래할 수 있는 범아시아 전력망 구축 계획을 공개했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디지털 산업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국가별 전력망만으로는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배경이다. 특히 대규모 AI 연산 시설과 첨단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동시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마사토 칸다 ADB 총재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연례 이사회에서 "에너지와 디지털 접근성이 아시아·태평양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며 "국경을 넘어 전력망과 디지털 네트워크를 연결하면 비용을 낮추고 성장 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범아시아 전력망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다. 기존 아세안 전력망과 남아시아 소지역 경제협력, 중앙아시아 지역경제협력(CAREC) 에너지 전략 등을 기반으로 확장되며, 투자 대상에는 국경 간 송전망과 변전소,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 디지털 전력망 기술이 포함된다. ADB는 전체 사업비의 절반가량을 자체 재원으로 조달하고, 나머지는 각국 정부와 개발 파트너, 민간 투자자를 통해 확보할 계획이다. 은행은 이번 사업을 통해 2035년까지 약 20기가와트(GW)의 재생에너지 연계와 2만2000회선킬로미터의 송전망 구축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2억명의 전력 접근성을 개선하고 전력 부문 탄소배출을 15% 줄이며, 약 84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ADB는 이와 함께 아시아·태평양 디지털 고속도로 구축에도 200억달러를 투입한다. 광섬유 네트워크와 해저케이블, 위성 통신, 지역 데이터센터를 확충하고 사이버보안과 AI 역량 강화도 함께 추진한다. 한국이 2000만달러를 지원하는 서울 AI 혁신·개발센터는 2035년까지 약 300만명을 대상으로 AI와 디지털 기술 교육을 제공할 예정이다. 디지털 고속도로 사업은 초고속 인터넷 신규 이용자 2억명을 확보하고, 추가로 4억5000만명의 인터넷 연결 품질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계획은 아시아 전역에서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는 흐름과도 맞물린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에서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이어지고 있으며, 필리핀 뉴클라크시티의 '팍스 실리카'(Pax Silica) 경제안보 회랑 역시 AI와 반도체 산업 거점으로 조성되고 있다. 시장과 정책 현장에서는 전력망 통합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 청정에너지 포럼에서도 각국 정부와 전력회사, 규제기관들은 AI와 전기차, 산업 전기화에 따른 전력 수요를 국가별 전력망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데 공감하며 역내 전력망 연계 확대 필요성을 논의했다. 다만 반발도 적지 않다. 기후·시민사회 단체들은 대규모 전력망 구축만으로 공정한 에너지 전환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며 우려를 제기했다. 화석연료 투자 지속 가능성과 핵심 광물 개발 과정에서의 환경 훼손, 원주민 권익 침해 등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번 구상은 AI 시대의 경쟁력이 연산 능력뿐 아니라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앞으로 아시아 각국의 AI 산업 경쟁은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국가 간 전력망을 연결하는 에너지 인프라 구축 속도에서도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