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전자신문 IT (ETNews)· 7/22/2026, 8:52:47 AM5.0

[새로나온 책]'나이로비에서 계산이 멈췄다'

어느새 우리는 숫자로 삶을 재단하는 데 익숙해졌다. 얼마나 빠르게 달려왔는지, 얼마나 많은 성과를 냈는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살았는 지가 삶의 가치를 대신하는 시대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하고 있다. 계산은 점점 정교해지는데, 우리의 삶도 과연 그만큼 풍요로워졌을까. '나이로비에서 계산이 멈췄다'는 이 질문에서 출발하는 에세이다. 저자는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대사관, 국제기구에서 활동해 온 정통 공무원이다. 책은 저자가 케냐와 태국에서 국제기구에서 경험을 통해 자신이 당연하게 여겼던 삶의 기준을 되묻는다. '빨리빨리'에 익숙했던 삶은 '뽈레뽈레(천천히)'라는 낯선 리듬 앞에서 잠시 멈춘다. 멈춤은 뒤처짐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이 책의 미덕은 해외 체험을 소개하는 데 머물지않는 데 있다.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나란히 세워 우리 사회를 비쳐보는 거울이 된다. 효율과 성과를 좇는 삶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관계와 공동체, 여유와 공감이 왜 삶의 주변으로 밀려났는지를 담담하게 성찰하는 시간을 준다. 책은 '케냐에서 마주한 맨얼굴', '당연함이 무너지던 순간들', '천천히 길이 된 태국'이라는 세 개의 큰 제목 아래 5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만난 주민들과의 대화, 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을 풀어낸다. 책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느리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백을 남긴다. 독자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성과와 속도가 최고의 가치가 된 시대,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성찰의 기록이다. 잠시 계산을 멈추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 책은 그 사실을 거창한 주장 대신 담담한 경험으로 들려준다. 속도가 경쟁력이 된 시대일수록 삶의 방향을 돌아보는 용기는 더욱 중요해진다. 인공지능(AI)은 계산을 대신할 수 있지만, 삶의 기준까지 정해주지는 못한다. '나이로비에서 계산이 멈췄다'는 계산보다 사람을, 경쟁보다 관계를, 속도보다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저자 박륜민은 지난 27년간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대사관, 국제기구를 오가며 다양한 현장에서 정통 관료로 일했다. 3년간 머물렀던 케냐 나이로비는 마음속의 고향이 됐고 책의 원천이 됐다. 현재는 태국 방콕의 한 국제기구에서 근무 중이다. 이경민 기자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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