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해관계인'의 무게
벤처투자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자본이다. 성공하면 높은 수익을 얻고, 실패하면 손실이 발생한다. 이것이 벤처캐피털(VC)의 존재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벤처투자 계약서에는 여전히 이러한 원칙을 무색하게 만드는 조항이 적지 않다. 최근 논란이 된 '이해관계인' 조항이 대표적이다. 투자계약서에서 이해관계인은 일반적으로 창업자와 특수관계인, 계열사 등을 포괄한다. 문제는 이 조항이 각종 진술·보장 의무와 손해배상 책임, 위약 의무, 연대책임의 연결고리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회사의 책임이 어느 순간 창업자 개인의 책임으로 확대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에 나섰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는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상 벤처투자회사 및 벤처투자조합의 투자계약에서 고의 및 중과실 없는, 대표자 등 제3자에게 연대책임을 부과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벤처투자의 기본 원칙인 '유한책임'을 회복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이해관계인을) 계약 조항에 넣는 것은 탈법행위"라며 창업자 보호 원칙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법 개정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벤처투자업계에서는 여전히 "계약서에 이해관계인을 넣는 것이 관행"이라는 말이 나온다. 관행이라는 이유로 계약서에 포함되지만, 막상 분쟁이 발생하면 그 한 줄이 창업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회사가 어려워졌다는 이유만으로 개인 재산이 묶이고, 수십억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떠안는 사례도 적지 않다. 물론 투자자 입장에서도 일종의 안전장치는 필요하다. 투자는 자선사업이 아니다. 창업자가 고의로 회사를 훼손하거나 투자금을 유용했다면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상적인 경영 실패까지 개인이 무한정 책임져야 한다면 이는 벤처투자가 아니라 사실상의 담보대출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계약 당시에 창업자가 이를 제대로 협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초기 스타트업은 투자 유치 자체가 절실하다. 계약서에 적힌 '이해관계인'이라는 문구 하나가 어떤 법적 의미를 갖는지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채 서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창업 경험이 부족한 대표와 전문 법무인력을 갖춘 투자사 사이의 정보 비대칭은 여전히 크다. 벤처 생태계가 성숙하려면 투자자와 창업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계약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창업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는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영 실패까지 개인에게 전가하는 구조는 이제 재검토할 때다. 정부도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말로만 금지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투자업계 역시 '원래 이렇게 해왔다'는 관행에서 벗어나 계약서를 다시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인 조항이 정말 필요한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개인책임을 과도하게 확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을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은 실패를 전제로 혁신에 도전하는 산업이다. 실패의 위험까지 모두 창업자 개인에게 떠넘기는 계약 문화에서는 새로운 도전도, 혁신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는 투자계약서의 '관행'보다 벤처투자의 '본질'을 먼저 고민해야 할때다. 조성준 기자 csj0306@techm.kr